<고독의 매뉴얼> 리뷰

2020. 12. 6. 01:35Personal Thoughts

"일상을 지배하던 고정관념의 독재가 멈추고 새로움에 관한 사유가 가능해지기를"

 

개인적인 이야기

대학교 3학년 때 백상현 교수님 수업을 들었다. “대중예술의 이해” 였던가, 뭐 비슷한 이름의 교양이었던 것 같다. 수업 내용은 프로이트, 라깡의 관점에서 다양한 인물이나 미술작품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수업이었다. 공학도였던 나는 철학에 대한 목마름을 교양수업에서 채웠다. 여담이지만, 공대생들이 대학에서 인생을 배우려면 발품을 팔아야한다. 공대 교수님들은 "버블소트는.."부터 수업을 시작하시기 때문에 인생은 무엇인가, 우주의 먼지일 뿐인 나는 왜 이렇게 삶에 집착하는가 에 관심이 있는 공대생이라면 교양 수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학시절 필기

 

리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고싶다. 책 리뷰가 궁금하다면 아래로 내려 <고독의 매뉴얼> 리뷰 부터 보면 된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내 인생은 왜 남들과 비슷해질까? 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된다. 나 역시 종종 했던 생각이었다. 과연 나는 왜 남들과 비슷하지 않으면 불안해질까? 

 

수업 들을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이제 막 어른이 됐고, 인생을 거시적으로 봤을 때 20대 초반에 자아 성찰을 많이 해 두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삶의 전체적인 방향성과 행복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었다. 나를 객관화 하고, 내면에서 추구하는 나와 외적으로 보여지는 나의 갭에 대해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나를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는 내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고 당연히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만, 뭐라고 해야될까, "철판깔기"를 잘 한달까. 진짜로 그렇다.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격 유형 테스트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기질이 '무시하는 능력' 이었는데 실제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대해 의연하다. 힘든 일이 생겨도 곧잘 무시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높은 사람이다. 친구가 넌 감정에 대한 on/off 스위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과 다르더라도 내 소신을 말할 줄 아는 삶, 손가락질 받더라도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삶을 살자는 방향성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그런 만큼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왈가왈부 하지 않는 편이다. 본인 삶에 대한 고민은 본인이 가장 많이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면 응원이나 비난보다는 '그렇구나, 존중해' 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이야기다. 범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많았고 보통은 회의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결국 사람들은 욕 먹기 싫어서, 손가락질 받는 게 두려워서 보통 사람들이 잘 살았다고 말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회귀시킨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저자가 가장 경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타자의 삶, 강박증적 삶이 바로 이런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사는 게 가장 나 다운 삶일까? 라는 생각의 종착지는 높은 연봉, 좋은 집, 좋은 차를 타는 것만이 성공한 삶일까? 꼭 남들처럼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취직을 하고,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야지만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이 유독 이런 문화가 고착 돼 있다) 로 수렴 되다가 사방으로 흐드러지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솔직히 사춘기적인 질문들이라 부끄럽지만, 여튼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고, 대답은 항상 ㅡ아니다, 더 본질적인 뭔가가 있다ㅡ 였다. 그러나 그 본질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본질이라고 생각되는 존재가 고개를 빼꼼 내밀 때 마다 보편적인 질서나 생각을 거스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은 긴가민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런 생각들은 서랍 속에 감춰두고 혼자 몰래 꺼내 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 수업을 만났고, 서랍 속 비밀들을 시험지에 시원하게 펼쳐 A+를 받아냈다. 수업을 듣고 나서야 나의 자아성찰 과정에 공백을 불러오는 순간들이 존재했고, 왜인지 모를 불편함은 라깡이 말하는 균열의 출현이자 우울증적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쉽게 말 해 걍 내가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나 관념에 저항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거다. 왜 꼭 그래야되지? 왜? 꼭? 굳이? 뭐 이런 뉘앙스의 생각들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공백은 개인에게 상실감을 주고, 불안하게 만들기 마련이지만, 그 순간 새로운 차원의 진리가 출현한다. 이런 과정들에서 개인은 고독해지고 고립을 느낀다. 그래서 책 제목이 <고독의 매뉴얼> 이다.

 

고독           1. 혼자라고 느껴 외로운 것. 외로움.

매뉴얼        1. 기계나 컴퓨터 따위의 사용 방법이나 기능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 순화어는 '설명서', '편람', '안내서'.

 

고독해지는 방법이나 기능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 정도 되려나. 책 제목 잘 지었다.

 

<고독의 매뉴얼> 리뷰

 

 

 

이 책은 확실히 어렵다.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의 향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을 책(언어)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공백, 유령과 같은 자연언어로 실체가 없는 지표들을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참 잘 쓴 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연어의 테두리에서 한계 지어지는, 공백의 순간이 언어라는 블랙홀에 잠식 돼 버리는 듯한 아슬아슬함을 계속 느꼈다. 한 문장을 여러 번 곱씹어 읽어야 이해 되는 부분도 많았고 이해가 되는 순간 그 자체는 저자가 주장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출현'임을 깨달았다. 분명 라깡과 바디우에 대해 말하지만 백상현의 언어로 재해석 된다는 점 또한 흥미로웠다.

 

프롤로그부터 진리는 없다는 걸 전제하고 들어가는 책이다. 클리어하고 적나라한 전제가 맘에 든다. 정답, 진리, 정상과 비정상 그런 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고독의 매뉴얼>은 고독, 우울증적 균열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차원의 진리를 다룬다. 

 

인생이라는 소설

우리는 종종 삶을 한 편의 소설에 빗댄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작가와 소설속의 주인공이 일치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살아간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언어, 조건들에 의해 평가된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미니스커트는 그저 개성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만약 그녀의 시대적 배경이 미니스커트가 허용되지 않는 시대였다면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수많은 질타와 비난, 어쩌면 처벌을 받아 본보기로 처형 당했을 지도 모른다. 2020년 현재의 관점에서 그녀를 본다면, 여성적 주체성의 실천과 관련된 투쟁의 기록이 된다. 극단적일지도 모르지만 그정도로 개인의 삶은 사회적 언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우리는 '타자의 언어'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지나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조건과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삶을 설계하고 그것에 (어쩌면 억지로) 맞춰 살아간다. 결국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한계에 갇힌다. 솔직히 좋은 집, 좋은 차, 높은 연봉을 받아야 성공한 인생이다, 라는 무의식의 소리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소설속의 주인공이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내가 아닌 타자다.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는 것? 모순된 추리소설이다. 

 

저자는 타자의 삶을 대신 살지 않으려면 나의 음성에 집중해야 된다고 말한다. 누가 지금 진리에 관하여 묻고 있는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어떻게해야 잘 고독해 질 수 있는가?

 

몰락과 붕괴는 창조의 시작이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문명에 대한 인식은 프로이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프로이트 이전에는 모든 문명이 인간의 이성에 의해 발전되어가는 유토피아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프로이트 이후 사람들은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무의식속에서 견고한 질서의 미묘한 일그러짐을 잡아 늘림으로써 과거의 세계를 붕괴시키고, 균열을 만들어낼 때 문명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런 프로이트적 관점을 잘 표현해주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백상현 교수님 강의에서 이 그림에 대해 인상깊게 배웠었고 친구들에게도 몇 번 설명한 적이 있어 좋아하는 그림이다. 강의실 대형 스크린에 이 그림을 띄워놓고, 교수님이 왔다갔다 하면서 프로이트 이야길 하셨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르네상스 화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라는 그림이다.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은 가운데 소실점 앞에서서 보도록 설계 된다. 르네상스가 문학, 예술, 과학,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흥했던 시대인 것을 보여주듯 소실점에서 본 <대사들>은 지구본, 책, 악기, 각도기같은 오브제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보면 아래 일그러진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소실점이라는 보편적인 시선,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사각지대(균열)에 가서 그림을 보면 비로소 해골이 보인다. 해골은 "르네상스가 제아무리 과학과 이성을 외쳐도 죽음 앞에 우리의 이성은 무력하다"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란, 즉 넌센스를 시사한다. 해골은 강박증자가 만나게 되는 히스테리증적 순간이다. 다시 말해 세계의 일관된 질서가 붕괴되는 것을 출현시키는 순간이다. 이러한 순간은 아주 우연히 어떤 특정한 순간 갑자기 만나게 된다. 의도하지 않고 우리의 통제가 잠시 발을 헛디디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진리의 순간이다. 대부분은 해골을 무시하지만 그 해골에 집중하는 것이 프로이트였다.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 것인가?

간단하다. 남의 명령대로 살지 말자. 사회의 명령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강박증적인 자세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방식을 진리라고 볼 수 있을까? No.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진리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리라는 단어의 어원은 보편적이고 영원한 어떤 것이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특히 가치라는 지표에는 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윤리, 자유, 평등, 사랑 이런 것들 말이다.

 

Q. 윤리란 무엇인가? 

A. 무엇이 윤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윤리다. 지금 내 앞에 '윤리'라고 말해지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는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윤리라는 가치에 균열을 만드는 것, 윤리에 대한 진리의 출현이다. 

 

Q. 자유란 무엇인가?

A. 조선시대 사람들은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바라본 조선은 진정 자유로웠을까?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자유로운가? 이런 질문을 계속 하는 과정 자체가 타자의 지배에 반항하는 히스테리증적 순간이다. 자유에 대한 견고한 정의에 균열을 만들 때 우리는 고독해지고 자아의 몰락을 초래하는 유령이 출현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 안타깝게도 양가 부모는 둘의 사랑을 반대한다. 부모님의 반대에는 속견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여기서 속견이란 고정관념이며, 타인이 만들어 놓은 지표이며, 타자의 세상에서 상당히 정확하다. 그 둘이 부모님 말을 듣고 헤어진다면 윤리적인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No다. 부모님의 반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이데올로기다. 남들의 이야기다.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

진리는 어쩌면 외설적인 것, 타락한 것이다.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은 우리의 안락함을 파괴하고, 우리가 믿고 의존하던 것들을 거부하도록 선동한다. 주어진 세계로부터 타락하지 않는다면 진리라는 건 시작도 될 수 없다는 명제를 안고 시작한다.

 

끊임없는 논박, 논증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적 행보 그 자체가 주체스러운 순간이며 진리에 가까워져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가 공동체의 이데올로기에 질문을 던지면 공동체는 그 사람을 고립시킨다. 그러나 문화가 진보할 수 있었다면 그런 고독, 고립 덕분일 것이다.

 

초선명 사회

저자는 21세기 현대를 UHD 초선명 사회라고 표현한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매거진 중 <뉴필로소퍼>라는 철학 매거진이 있다. 그 중 '상품화된 세계 속의 인간' 이라는 호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저자가 말하는 초선명 사회 즉 "나는 상품화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보고 떠올랐다. 주어진 단어와 지식에 의존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려는 사람들. 내가 누구인지를 지금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사람들. 연봉이 낮으면 연봉을 높이려고 애를 쓰고, 성적이 낮으면 성적을 높이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가치와 존엄성에 평가 항목을 부여하며 수치로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살고있다. 그리고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떨어져서 다시 한 번 사유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상품화된 세상이 본질적이고 괜찮다는 환상을 거부해보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철학과 정신분석에서는 남들이 다 가는 안락한 길을 가는 것을 소외된다라고 표현한다. 남들의 담론에 의해서 나의 인생, 나의 가능성이 결정되는 것. 나는 진정한 나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신경증자의 은유

마지막으로, 책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백상현 교수님 수업 중 인상깊었던 강의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신경증자란 일반 사람들을 말한다.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어릴적 느꼈던 부모에 대한 성충동을 잘 억압하고, 세계의 질서와 타협해 타칭 '정상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은유를 한다. 보통은 부정적인 현실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은유를 한다. 아래는 실제 교수님이 수업에서 들어주셨던 예시다.

 

ex1) "니네 부모님은 끝났어. 썩어서 흙이 될거야." -> "하늘나라에 좋은 곳에 가셨어. 언젠간 만날거야."

ex2) 단촐하고 초라한 음식 -> 어머니의 손맛 (따뜻하고 positive한 이미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은유는 '은유하지 않았다면 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은유함으로서 공백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신경증자들은 이런 은유보다 훨씬 시적인 은유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예를들어 '방황'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험'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은유할 수 있다. 혹은 '험담'을 타당한 '비판'으로 은유 할 수도 있다. '불법집회'를 '민주주의'로 은유하기도 한다. '범죄자'를 어쨌든 갱생 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으로 은유하기도 한다. 

 

이런 시적인 은유는 어떻게 보면 합리화같고 오바스러울 수도 있다. 방금 이런 은유들을 보고 불편하다고 느꼈는가? 우리 사회의 지배 관념과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난 발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불편함이 바로 균열이며, 고독과 고립의 순간이며, 우리가 주체로서 균열을 인정하고 공백을 불러낼 때 비로소 진리가 출현할 건덕지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미래로 개방해주는 은유는 바로 이런 메타포적인 은유라는 것이다. 

 

리뷰를 마치며

리뷰를 거의 3주간에 걸쳐서 쓴 것 같다. 평일엔 너무 바빴고 주말중에 일부를 투자하긴 했지만서도 꽤 오래 썼다고 생각한다. 내가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고의 확장감이 좋기 때문이고, 고독의 매뉴얼은 그런 점에서 차고 넘치게 나를 만족시켰던 책이다. 저자의 책 중 <라깡의 루브르>도 읽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리뷰 할 생각이다. 아님 최근에 나온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고.. 어쨌든 적절한 시기에 좋은 철학자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라깡, 알랭 바디우 그리고 백상현 교수님같은 철학자가 존재함에 감사하다.

 

 


누구도 금지된 사랑에 매달린 두 사람을 동정하지 않는다.

누구도 도청을 사수했던 그들의 죽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도 갈릴레이의 미친 지동설을 믿지 않는다.
귀를 자른 화가의 작품을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독 속의 그들은 당신들의 평범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미래는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에.

 

 

 

 

 

 

Ref 1. 2015년 당시 수업 자료, 백상현 교수님 블로그 https://blog.naver.com/voice2void/220391953568 

Ref 2. 고독의 매뉴얼 저자와의 만남 www.youtube.com/watch?v=NQc1paNKeRo&feature=emb_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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