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2023. 9. 29. 22:36Personal Thoughts

"이 책은 기적, 영(靈), 또는 불타는 덤불 같은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아, 제목부터 흥미롭다. 어딘가 중립기어를 세게 박고 읽기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책 제목이란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뇌에 힘을 세게 주고 중립기어를 박았다. 어느 진영에도 편중되어 있지 않은 채 이성적으로 종교를 해석한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보통의 책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지 않고, 문장의 개연성이 좋아서 술술 읽히는 편이라 좋아한다. 다만, 이 책은 보통의 책이라서 읽은 건 아니었다. 아는 사람에게 추천을 받았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보통의 책이었던 것. 사랑이야기만 쓰는 아저씬줄 알았는데 말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종교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정확히는, 종교는 늘 나에게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상업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666베리칩 아저씨를 보면 물음표가 백만개 떠올랐다. 

 

666베리칩

사람들은 뭐 때문에 종교를 가질까? 종교인들에게 자신의 신은 어떤 의미를 줄까? 하늘에서 뭐가 내려왔고.. 죽었던 인간이 환생해서 신이 되었고.. 이런 걸 '왜' 믿을까?(부정의 의미가 아니다. 정말 '왜' 어떤 이유로 믿는건지 궁금함.) 나는 그들의 세계가 알고싶다. 길 지나가다가 나누어주는 종교 관련 선전물도 버리지 않고 자세히 읽어보는 편이다. 이 글의 어느 부분이 사람에게 끌림을 주는걸까? 싶어서 요목조목 따져보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이해하는 종교는 칸트의 관점에서 정도였다.

 

임마누엘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너무 큰 자유가 주어지면 오히려 불안감을 느낀다. 결국 어느정도 규율과 통제속에 속박되어야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그 통제 수단 중 하나로 종교를 언급한다. (여담이긴 한데,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동물이지만, 자유의 망망대해에 놓여지면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은 조금 모순적이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은 자유에 방치된 상황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칸트는 이에 대해서 '이성적인 판단 하에 어떠한 외부의 압력 없이 스스로, 자유롭게 세운 '규칙'을 매일 수행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라고 주장했다. 칸트 본인도 몇 시에 기상하고, 몇 시에 산책을 하고.. 이런 강박적인 규칙속에 살던 사람이었는데. 본인의 상태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롭고 안정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일리있지 않은가!) 즉, 인간이 안정감을 위해, 본인 스스로를 어떤 규율에 밀어넣은 상태로 만들고 싶어했고, 그 도구가 종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이 말하길, 종교의 의미는 자유하기 위한 규율,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거다. 이 책은 공동체, 친절, 교육, 자애, 비관주의 등등 여러가지 카테고리로 종교를 설명한다. 아래 문구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만약 하느님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이라면

. . .

우리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바로 이 책의 전제이다."

 


 

첫 번째, 현대 사회에는 공동체 정신의 상실이 존재한다. 이 공동체적 상실감을 종교안에서 채울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종교에 끌린다는 관점이다.

 

호모 사피엔스 시절에 비하면 인구가 수천배 늘었지만, 그때보다 지금 더 서로에게 차갑다.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 사람이 안전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복불복이다. 오히려 인구가 적었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적어도 부족 내에서는 타인에 대한 안정성이 보장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소외(疏外)는 종교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경제력과 지위에 근거한 집단의 구분을 적극적으로 무너트리고, 우리를 인간성의 더 넓은 바다로 내던진다. 교회는 세속적 지위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리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권력과 돈이라는 외적 속성보다는 오히려 사랑과 자비라는 내적 가치가 더욱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 교회는, 소외(疏外)로부터의 구원이었다.

 

두 번째, 원죄의 교리에 관련 된 내용이다. "저는 죄 중에서 태어났고, 허물 중에 어머니가 저를 배었습니다." 구약성서(시편 51편)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신약성서(로마서 5장 12절)의 내용이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짓고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곳은 종교다. 또한, 그 원죄를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해주는 것도 종교의 역할이다. 인간 개인이 본인의 선천적인 '악'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할 때 종교가 '그건 당연한 거야. 이 곳에서 진심으로 죄를 뉘우친다면 널 용서해줄게.' 라고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종교는 인간을 초월하는 어떤 상징이라는 점에서 인간들에게 끌림을 준다. 우리가 성취나 성공, 불안감등 어떤 세속적인 것들에 휘둘릴 때, 우리를 뛰어넘는 초연한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안정감을 준다. 예컨대, 종교는 인간의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일 뿐이며 수동적인 존재임을 인식시켜주고, 인간은 거기서 안정감을 느끼기에 종교를 쫓는다는 것이다. '그래, 그까짓 성공 좀 못 하면 어때.', '그래, 이렇게 힘들어 해봤자 나는 우주의 먼지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며 희한하게 위로를 받는것이 인간이고, 종교는 그 관점을 이용한다. 우리보다 더 크고, 더 연륜이 많고, 더 뛰어난 누군가에 의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 놓였다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굴욕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미술과 건축의 관점에서도 종교의 의미를 풀었지만, 나에게는 크게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인들의 심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이 이 책의 내용을 읽게 된다면, 자신이 그런 심리적 기조에서 신앙심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면, 좀 더 메타인지적으로 자신의 신앙심을 바라볼 수 있게 될까? 싶긴 했다. 재밌게 읽었다. 무신론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고 그들의 세계에 발 담궈보기에 괜찮은 책이었다.

 

우리가 각자 모든 감정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는 상당히 현명하다.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충주의 한 멋진 시골집 테라스에서 커피와 함께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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